0. 섹스는 사랑과 맞닿아 있는가. 1. “지금요?”충재가 뒷통수 쪽에 걸린 시계를 돌아다 본다. 자다 깬 눈이 어른거린다. 두어 번 깜빡이자 이제 막 3를 지난 시침이 또렷해진다. “진짜 지금요?”믿을 수가 없단 건지, 제 기분을 위해 다시 확인해 달란 건지. 여하간 목적 모를 질문이다. 얼굴이 까칠한 야간 사감이 고개를 끄덕인다. 숱 많은 충재의 눈썹이...
1. 카펫 아래로 발소리가 묻힌다. 복도를 빠르게 통과한 동완이 검은 문 앞에 선다. 손에는 마스터키가 들려있다.잠긴 문 안쪽으로는 서러워 축축한 공기가 가득하다. 비가 죽죽 긋는 창밖을 동경하는 모양이다. 축축한 공기로 코를 적신 동완이 군더더기 없이 방을 가로지른다. 그리고는 선호의 책상 앞에 반듯이 선다.아랫배까지 내려가지 못한 숨이 가슴께를 부풀린다...
1. “마셔라 마셔! 마셔라 마셔!!”환영식이다. 새로 온 실장님 이름도 아직 못 들었지만, 환영식으로 시작한건 맞다.테이블 끄트머리에 겨우 앉은 정혁은 코 끄트머리에나 간신히 묻는 조명을 피해 등을 젖힌다. 정혁은 저 떠들석한 소란에 동참할 수가 없다. 술이 싫은건 아니다. 방금도 제 손으로 잔을 채웠다.이유를 찾자면, 그냥.정말 그냥이다.소란한 테이블 ...
1.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갖자.”꿈이다. “생각?”그래 이랬었다. 화가 나면 허리를 짚는 습관을 마지막으로 본게 이때였다. “너 진짜 개새끼다.”혜성이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화를 냈다. 이제는 신선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혜성이도 결국 “시작은 생각도 않고 하고, 끝은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너 대단한 놈이라고 자랑하는거야?”그냥 무수한 사람들 중 하...
1. 안녕 여름!아이들이 박박 닦은 대리석 복도 위로 몇 개의 구두 발자국이 찍혀있다. 눈이 묻어 지저분해진 자국이다. 주인 모를 발자국을 따라 2층 복도를 총총히 걷던 선호가 어깨에 올라온 몇 송이 하얀 것을 푸드득 털어낸다.춥다. 수능 응원 갔을 때보다도 추운 날이다. 봄이 바로 문앞인데, 너무하게 춥다 정말.낡은 건물 사이사이로 바람이 스민다. 방학이...
“뭐 하나만 물어보자.”푹 수그린 정혁의 목덜미가 까딱 움직인다. 동완은 잘난 뒷통수에 글라스를 꽂고 싶어졌다. “넌 어떻게 그렇게 탁탁 잘도 꼬시냐.”어깨가 몇 번 들썩인다. 이마빡은 테이블에 붙은 채다. 웃는거다. 지 잘난 맛에 사는 놈. “궁금해?”붕 뜬 목소리가 슬쩌기 고개를 든다. 취했다 이 새끼. “궁금해. 연예인은 난데 왜 맨날 너만 연애하는지...
1. “민서 어때요?” “민서요? 어떤 민서요?” “신민서요.” “아아..”대화가 끝난다.좋아요 싫어요도, 싫진 않아요도 없는 대화다. 혜성은 이렇게 질문한 보람도 없는 대답하기를 자주했다.그래서 사람들은. 특히나 남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혜성을 싱거운 사람으로 기억했다. 누군가는 웃어도 개운치가 못한사람, 좋은게 좋은게 아닌 사람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불이 깜빡인다. 몇 번 이를 갈던 전구가 결국 터진다. 전구 하나에 의존하기엔, 비상구가 조금 넓다. 손톱을 까드득 뜯던채로 위를 올려다 본 충재가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낮은 조도에 적응하지 못한 눈이 눈물을 한 방울 흘린다.문득 정혁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랑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논하는 스물을 쳐다보던 삼십대 중반 줄의 남자가 떠오른다. 남자는 지치지도...
1. 사랑한다.사랑했다.사랑한다.사랑했다.사랑한다. 사랑했다.둥글게 굽어있던 정혁의 어깨가 빠르게 움츠러든다. 운명을 건 이과 팀장의 발이 빨라진 것이 그 까닭이다. 것참. 팀장님 아무리 남의 인생이래두 너무 막 걷는거 아니시냐구요. 신중치 못하게. “신쌤! 잠깐만요!”혜성이 드르륵 데스크를 박차고 나선다. 안해야지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가...
1.밤하늘 위로 따뜻한 연기가 맺힌다. 방금 비운 폐를 다시 연기로 채운다. 얇은 볼을 살짝 부풀린 혜성이 고개를 쳐든다. 삐쭉이 손질된 앞머리가 탄력있게 움직인다. 민우의 생일이 지난, 늦여름에 만난 두 사람은 혜성의 생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흰둥이의 옆구리에 걸터 앉은 혜성이 빈 손으로 사이드미러를 슬슬 쓴다. 사회 초년생에게는 유난스런 차다. 내부가 ...
1.진이 풀을 밟고 섰다. 구둣발에 몸을 빼앗긴 풀들이 녹색의 숨을 뱉으며 흔적을 남긴다. 땅 아래를 다져 밟은 진이 연기를 뿜는다. 손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끝이 너덜해진 가죽 지갑이 들려있다. 지갑은 늘었다 줄기를 반복했던 모양이다. 진의 손이 엄지와 검지로 까딱거리던 지갑을 가른다. “헛!”웃는 김에 연기가 튀어 나온다.지갑을 열자마자 진의 증명사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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