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클라이언트 온대요.” “아 그래?” 예. 하고 공손히 대답한 김대리가 허리에 손을 얹는다. 자신만만한 포즈가 아주 일품이다. “저번에 박실장님 계실 때 몇 번 왔었거든요,” “어디를. 현장을?” “예.” 허리에 올렸던 손을 코앞에서 휘휘 저은 김대리가 뒷 주머니에서 도면을 꺼내든다. “별다른 질문도 없고 요구 사항도 없고 그렇드라구요.” “좋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연락이 넘치게 온 날. 안경점과 빵집까지 답장할 필요는 없으니 대충 핸드폰 액정을 훑는다. 그러다 문득 반가운 이름이 보이면 답장을 할까, 하다가 말아버린다. 언젠가 그가 나에 대해 했다던 말이 떠오른 탓이다. 확실치는 않다. 이야기의 본질은 결국 누군가 무엇을 깨닫는데 있다. 아이언맨은 사랑과 희생을 깨닫고, 헐크는 자기애를 깨달...
0. 선생은 선생질을 하고 도둑은 도둑질을 한다. 1. 느적거리며 눈치를 본다. 퇴근 직전의 사무실 공기는 농도짙은 게으름으로 매워진 것만 같다. 누군가 푹 끓였다가 반쯤 식은 미련같기도 하고 버려야하는데 자꾸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신발 밑창의 씹던 껌같기도 하다.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를 째리던 혜성이 갑자기 위아래 방향키를 부서져라 두드린다. 타닥타닥타닥...
1. “혜성씨 내가 불편해요?” 네...니오. 뭐라고 입이라도 떼 보려는데 잘난 턱끝이 치켜 올라간다. 다 알고 있는 결말이라고 말하고 싶은 얼굴. “불편해도 참아요. 같이 벌어 먹고 살아야지.” 평소에도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먹고 사는게 그리 궁하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 우스웠다. 살짝 비틀리려는 내 입꼬리를 본 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탁...
척척하게 물 먹은 대걸레가 무겁다. 일층 복도부터 수고한 어깨도 덩달아 무겁다. “괜히한다 그랬어.” 전진한테 여기 하라고 할걸. 전진 핑계로 올걸. 괜히 한다고 손들어서는 어깨나 아프고. 입이 댓발 나온 선호가 빗자루 담당이 여기저기 짱박아 놓은 먼지를 찾아낸다.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먼지가 남아있던 복도가 선호의 손을 타자 금세 정리된다. 선호는 안...
0. 무수한 삶의 교차점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을 되돌려본다. 너와 나는 얼마나 묻어있는가. 1. 회장은 건물이 아직, 비어있노라고 했다. 교복 조끼가 어울릴 선호의 어깨에 검은 양복이 간신히 올려져 있다. “선호군이 앞으로 집처럼 드나들 곳이지!” 회장의 손이 어깨에 가볍게 부딪는다. 코웃음을 크게 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선호는 지금 그럴 상황이 못된...
안녕하세요! 지금은 6월 22일 토요일 밤입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곳은 토요일이 아닐 수도, 밤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부끄럽게도 독서 편식이 심해서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글에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제 방식으로 나열된 글자로 표현하고 싶어 카테고리...
1. 촬영장 한가운데에서 차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생각을 한다. 먼지가 면이 되고 면이 벽이 된다. 만들어진 벽의 맨 꼭대기는 만든 사람도 못 올라가게 깎아질러있다. 어떻게든 의식을 멀리 보내려고 조수석에서 몸을 뒤척이던 필교의 이마 정중앙에 똑. 빗방울 소리가 떨어진다. 놀라서 번쩍 눈을 뜨자 창밖에 후두둑 물기가 맺힌다. 밖에서 대기하던 스텝들은 몸을...
0. 쫌팽이 아니란거 취소. 예쁜 놈이 더 한다는 건 더블! 1. “야!” 이제 막 불을 붙이려는데 벼락같은 소리가 들린다. “절루 가서 펴!” 선호의 손에는 제빙기 얼음을 퍼내던 바가지가 들려있다. 소심하게 반항해보려는데 들숨날숨에 얼음이 달각달각. “너도 여기서 피잖아!” “난 사장이고!” 뭐. 넌 사장이고 난 꼽사리다 이거냐?! “넌 못생겼잖아!” 뭐...
1. “저 놈이야?” 끝이 삐딱하게 올라간 말 끝이다. 선호가 고개를 돌리자 정혁의 눈이 눈 쪽으로 슥 돌아간다. 열 받아도 소같이 껌뻑, 느리게 움직이는 눈을 따라 가자 앞 건물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서있다. “아니.” 카운터에 선 선호가 앞치마를 털자 불만 많은 정혁의 빨대가 바닥 긁는 소리를 지르며 시위를 한다. 귓속을 괴롭히는 방해도 무시한 선호가 ...
1.카톡이었다. 몇 줄도 아니고 몇 글자였다.돈 많고 시간도 많은데 심지어 남한테 관심도 많은 문정혁은 그 뒤로 연락이 안됐다. 문정혁이 술 취해서 남긴 몇 글자가 발 뒤꿈치부터 정수리를 싸하게 관통했다. 곱씹고 곱씹을수록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돈 빼고 아무것도 믿을 것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돈백씩은 우습게 쓰는 손님까지도 거절하고 총알...
1. 끙. 길고 느리지만 일 초도 놓칠 시간이 없는, 참으로 의미 있는 섹스가 끝났다. 이럴 때면 두 사람은 빠르게 분리된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한 몸처럼 움직인 적이 없단 듯이. 너랑 한 섹스는 의무이자 덕목이었다는 것같이. 침대 헤드로 마른 등을 밀어 붙인 필교가 담배를 문다. 협탁에 있던 걸 아무렇게나 잡는다. 이거나 저거나. 내꺼나 니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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